Wednesday, December 25, 2013

복음보다 평화, 그리스도보다 평화가, 그래서 부처와 예수가 비슷하게 되는 현실,,,,,,

교회에 간 법륜 스님 "예수님 오신 참 뜻은?"

오마이뉴스 | 입력 2013.12.25 14:53                  
 
 
[오마이뉴스 이준길 기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이다. 24일 밤12시, 그러니까 오늘 25일 0시 갈릴리 교회에서는 스님이 교인들에게 설교를 하는 훈훈한 풍경이 펼쳐졌다. 갈릴리 교회를 찾은 사람은 바로 법륜 스님.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풍경일 수 있지만 법륜 스님에게는 오래전부터 해 온 익숙한 일이다.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이웃 종교인들과 함께 교류하고 활동해 오고 있는데, 오늘 이런 교류도 그런 활동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법륜 스님은 갈릴리 교회 인명진 목사의 설교를 듣고 성서 봉독도 하고 찬송가도 부르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함께 축하했다.



▲ 성탄절갈릴리 교회 성탄절 예배에 참석한 법륜 스님.
ⓒ 이준길
인명진 목사의 성탄 축하 설교가 있은 후 예배가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인명진 목사가 즉석에서 법륜 스님에게 성탄 축하 인사를 청하였다. 큰 박수를 받으며 설교단에 오른 법륜 스님은 교인들을 위해 이렇게 성탄 축하 인사를 해주었다.



▲ 성탄절교인들에게 성탄 축하 메세지를 말하고 있는 법륜 스님.
ⓒ 이준길
"지금 한국 사회는 많은 갈등이 있습니다. 제주도 강정 마을에 가 봐도 주민들의 아픔이 너무 크고, 밀양 마을에서도 노인 분들이 갑자기 날벼락 맞듯이 한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세상일이라는 것은 서로 견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이해관계도 서로 다르고요. 그러나 서로 합의해서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이렇게 힘 약한 사람들이 원한 속에서 죽어만 갈 수 밖에 없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저희들의 힘이 너무 미약함을 느낍니다. 오늘 예수님 오신 기쁜 날, 이렇게 약간 기운이 떨어지는 분위기를 만들어갈 수밖에 없는가. 이런 저희들의 삶에 대해서도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부처님은 이 세상에 어떤 의미로 오셨나요? 또 예수님은 어떤 목적으로 이 세상에 오셨나요? 우리가 그 분들을 따른다는 것은 그 분들의 삶을 본받아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종교인들은 그분들의 희생을 내세워서 보상만 바라는 그런 역할만 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봅니다. 다만 그분들의 삶을 칭송하기만 하고 우리는 그냥 덕만 보는 이런 데에 좀 급급한 것 아닌가. 그분들의 삶을 만에 하나라도 닮아가려고 하는 의지가 있다면 우리 사회가 지금 보다는 조금 낫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자 부활의 새로운 희망이 생겼듯이 이런 어려운 시기에 우리가 다시 부활의 기운과 힘을 가져야 될 것 같습니다. 좀 더 마음을 모으고 사회를 좀 더 화합시키고 남북이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길을 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오늘 어떻게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부활의 희망을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교인들의 스님의 성탄 축하 메세지에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법륜 스님은 축하 인사를 마친 후, 그동안 갈릴리 교회를 오랫동안 이끌어오고 우리 사회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준 인명진 목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꽃다발을 전했다.



▲ 성탄절갈릴리 교회 인명진 목사에게 꽃다발을 건내주는 법륜 스님.
ⓒ 이준길
인명진 목사는 법륜 스님에게 꽃다발을 선물 받고는 "목사에게 스님이 꽃다발을 선물하는 건 세계 교회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라며 기쁜 마음을 표현했다.

목사와 스님이 이렇게 함께 교류하고 화합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부처님과 예수님도 동시대에 살았다면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가 자꾸만 극한의 대립과 갈등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오늘 법륜 스님과 인명진 목사가 보여준 이웃 종교인들과 화합하는 모습은 어떻게 갈등을 해결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귀감이 된 것 같다.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많은 정치인들도 이런 모습을 많이 본받아 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예배가 모두 끝나니 새벽 1시가 넘었다. 교회 문을 열고 나가니 예년보다 포근한 날씨의 성탄절이다. 날씨처럼 그리고 오늘과 같은 종교인들의 아름다운 화합처럼 우리들의 얼었던 마음도 포근해지면 좋겠다. 기쁘고 즐거운 성탄 맞이하시길!

Sunday, December 22, 2013

모두에게 자신의 생각을 격려하는 것이 좋은 것인 줄 알았던 시절,,,,,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없이 자신의 주장을 격려받고, 자신의 의견에 대한 수용이 거절될 때의 적절한 태도들에 대한 가르침없이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속에서 진리를 잃어버리는 길이 아닌가,,,,,

경기도 청소년들은 입시 경쟁이 아닌 꿈과 열정을 키워주는 학교를 바라며 안정적인 입시 제도와 체계적인 진로 교육 정책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단법인 행복한미래교육포럼(대표 최창의 교육의원)은 21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경기영상과학고 체육관에서 경기도 청소년 500인 원탁회의를 개최하고 자유토론과 투표를 통해 교육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였습니다. 이 날 참석한 500여명의 고등학생들은 9명씩 원탁모둠을 편성하여 100여명의 퍼실리테이터 교사들의 진행아래 “우리가 꿈꾸는 행복한 학교”를 주제로 3시간 넘게 진지한 토론을 벌였습니다.
청소년이 행복한 학교를 실현하기 위한 교육정책으로는 과정중심 평가 및 배움중심 수업을 안착할 ‘안정적인 입시 제도’를 요구하였습니다. 이어 △체험 중심의 체계적이고 전문성있는 진로교육, △교육정책 수립시 학생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일부 학생들은 교육감 투표 참여권을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밖에 △학생들의 특성에 맞는 자유로운 교육과정 설계, △교사들의 전문성 신장을 통해 주입식교육을 지양하고 토론 발표 수업을 진행해 줄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이번 원탁회의는 학생들이 주체로 나서서 학교 교육에 대해 집단적으로 문제의식을 갖고 논의하고 정책 대안까지 제시한 수준높은 토론회였습니다. 이번 원탁회의에서 제안된 내용을 교육청은 물론 자치단체, 국회와 지방의회기관에 전달해 청소년들이 요구한 정책들이 반영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습니다.”

학생들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
어떤 면에서는 그들의 생각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문제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의 죄성의 한계를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그 죄성을 더욱 부추기는 상황이 되어집니다.

인간은 (학생을 포함) 이기적이며, 죄인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모르고, 그 분 앞에 겸손하지 않으면 우리의 욕심을 추구하기에, 모두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안에서 살펴보지않으면, 자신의 죄성으로 인해 자신의 촛점을 맞춘 제안이 나올 수 밖에 없고,

Wednesday, December 4, 2013

"중력은 신의 창조물"..과학시험 문제 맞아? ;;;;;;;;; 미국의 기독교학교에서 조차 문제가 되는 진리; 이런 세상속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이런 기사가 한국에서 드러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도 굉장히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는 반증이 아닌가?

"중력은 신의 창조물"..과학시험 문제 맞아?

서울신문 | 입력 2013.12.05 13:57 | 수정 2013.12.05 14:22
 
 
 
 
[서울신문 나우뉴스]종교적 관점을 강요한 학교 시험문제가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미국 온라인 매체 허핑턴 포스트는 특정 종교적 관점을 강요한 과학 시험 문제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돼 논란이 되고 있다고 3일 보도했다.

사진에는 한 미국 학교의 과학 과목 시험 5개 문항이 담겨있다. 1번에서 3번까지는 '중력(Gravity)'에 관한 일반적 상식을 묻는 평범한 과학 문제다. 논란이 된 건 4번과 5번 문항이다.

4번 질문인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중력을 설명할 수 있는가?"의 답은 "설명 할 수 없다"로, 5번 질문인 "기독교인들은 중력이 어떻게 발생한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답은 "신께서 창조하셨다"로 표시됐다.

이 사진은 한 레딧(Reddit·소셜 네트워크 서비스·ID: Dtooth0) 유저가 공개했다. 이 사진은 업로드와 동시에 뜨거운 관심을 받았는데 3500건이 넘는 리플이 달렸다.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모두 "정말 이런 시험지가 존재하는가?"라며 의구심을 드러냈다.

네티즌들의 의심이 이어지자 사진을 올린 레딧 유저는 답변을 올렸다. 그는 "플로리다의 한 사립 종교 학교에 재학 중인 딸의 시험지"라며 "나도 이 시험지가 가짜였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해당 학교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네티즌 대다수는 "종교의 자유는 분명 존재하지만 학교에서, 그것도 과학 시험문제에 종교적 관점을 강요하는 것은 너무하다"며 부정적 의견을 표출했다. 일부 네티즌은 "시험문제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일반 학교도 아니고 사립 종교 학교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는 답변을 달기도 했다.

한편, 작년에도 미국 사립 종교 학교에서 종교적 관점을 학생들에게 강요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사립 종교 학교인 블루 리지 크리스찬 아카데미(Blue Ridge Christian Academy)는 수업 시간에 "신께서 공룡을 만들었다"고 가르쳐 논란이 됐다. 이 학교는 재정적 문제로 문을 닫았다.

사진=레딧(Reddit.com) 캡처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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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December 1, 2013

미 저명 유전학자의 주장은 우리 시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이 침팬지와 돼지 잡종에서 진화했다라고 밖에 과학은 말할 수 없다. 그 저명학자의 입은 그렇게도 신뢰하는 과학의 결과를 보여준다.

美 저명 유전학자 "인간은 침팬지와 돼지 잡종에서 진화했다"

서울신문 | 입력 2013.12.01 18:47 | 수정 2013.12.01 18:57
 
 

Saturday, November 23, 2013

"법륜스님의 지속가능한 행복을 위한 조언" 하나님없는 인생에 관한 조언은 그것이 성경안에 있는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 같을 지라도, 그 근거와 기초가 다르기 때문에 헛된 결과를 가져오는 것에 대해서 슬프기만하다. 아내를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없이 자신의 의와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결국 자신의 인격의 힘과 마음의 행복을 위한 것이기에 그 노력은 한계가 있으며 참된 평안을 얻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근거가 불안전한 죄인의 마음속에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더 용서하고 여유롭게 이해하고 사랑하고 싶지만, 손상되고 어긋난 우리의 욕심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지 못한다. 이런 평범한 진리를 삶에 살아가는 데도 우린 우리의 욕심을 근거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내면을 곧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한계를 가지고 힘이 없다. 주님을 근거로 우리의 삶이 온전해진다. 주님의 죽으심과 포기하심속에서 우리가 하나가 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길로 갈 수 있는 보장을 받는다. 그것이 한 걸음의 성숙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주님을 닮아가길 소원하는 성령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거주하심속에서 힘을 얻고, 그 내면의 성숙은 외면의 순종으로 나타나 모든 관계를 주님의 사랑으로 대할 수 밖에 없게 되며, 그것은 영원한 지속가능한 성장을 가진다. 그 분이 영원하시고, 불변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를 의지하고 근거로 삼는 것이 아니라, 성삼위 일체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우리의 삶을 근거할 때 지속가능한 행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하다. 법륜스님은 일반적인 진리를 말하는 것 같으나, 그렇게 살 능력이 손상된 인간의 모습과 동력의 한계를 언급하지 못하고 있으며, 실제적인 지혜를 이야기하나 그것이 결국 힘이 없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삶의 원리에 대한 실제적 지침만 있지, 그것의 근원과 그런 당위성을 그본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왜 부모가 자녀를 떠나 보내야 하고,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는 지, 그렇지 않으면 왜 불행한 것인지, 단순히 현상적이니 상황에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두신 우리의 근본적 태도이다. 그 근본을 벗어나면 당연히 아픔이 있고, 도리를 벗어나면 그 고통의 결과를 가지게 되는 것이 섭리다.

"법륜스님의 지속가능한 행복을 위한 조언"  하나님 없는 인생에 관한 조언은 그것이 성경안에 있는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 같을 지라도, 그 근거와 기초가 다르기 때문에 헛된 결과를 가져오는 것에 대해서 슬프기만하다. 아내를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과 관계없는 자신의 의와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결국 자신의 인격의 힘과 마음의 행복을 위한 것이기에 그 노력은 한계가 있으며 참된 평안을 얻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근거가 불안전한 죄인의 마음속에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더 용서하고 여유롭게 이해하고 사랑하고 싶지만, 손상되고 어긋난 우리의 욕심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지 못한다. 이런 평범한 진리를 삶에 살아가는 데도 우린 우리의 욕심을 근거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내면을 곧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한계를 가지고 힘이 없다.

인간은 죄사함없이는 다른 사람을 온전히 사랑과 용서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없다. 주님을 근거로 우리의 삶이 온전해진다. 주님의 죽으심과 포기하심속에서 우리가 하나가 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길로 갈 수 있는 보장을 받는다. 그것이 한 걸음의 성숙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주님을 닮아가길 소원하는 성령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거주하심속에서 힘을 얻고, 그 내면의 성숙은 외면의 순종으로 나타나 모든 관계를 주님의 사랑으로 대할 수 밖에 없게 되며, 그것은 영원한 지속가능한 성장을 가진다. 그 분이 영원하시고, 불변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를 의지하고 근거로 삼는 것이 아니라, 성삼위 일체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우리의 삶을 근거할 때 지속가능한 행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하다.

법륜스님은 일반적인 진리를 말하는 것 같으나, 그렇게 살 능력이 손상된 인간의 모습과 동력의 한계를 언급하지 못하고 있으며, 실제적인 지혜를 이야기하나 그것이 결국 힘이 없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지 못한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가, 그들은 존경하고 이해함으로 부부관계나 고부 관계를 갖으려고 하지만 우리 안에 있는 죄로 인해 늘 좌절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지 않고 있고, 또 다시 순간적인 다짐으로 잠시 그렇게 살라고 조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삶의 원리에 대한 실제적 지침만 있지, 그것의 근원과 그런 당위성을 근본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왜 부모가 자녀를 떠나 보내야 하고,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는 지, 그렇지 않으면 왜 불행한 것인지, 단순히 현상적이니 상황에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두신 우리의 근본적 태도이다. 그 근본을 벗어나면 당연히 아픔이 있고, 도리를 벗어나면 그 고통의 결과를 가지게 되는 것이 섭리다.
이런 근본을 언급하지 않는 조언은 잠시의 의미를 갖는 듯하나 결국 헛된 조언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내용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그것을 이룰 근본적인 엔진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행복을 위한 조언이 아니라 임시적인 조언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그 누구도 그렇게 지속적으로 주님없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법륜 스님의 지속 가능한 행복을 위한 조언 레이디경향 | 입력 2013.11.15 17:46   
 

 
찬바람이 불면서 한숨이 더욱 깊어지는 것만 같은 당신, 가슴속 응어리를 한 올 한 올 풀어내자니 천년만년은 걸릴 듯하다. 즉문즉설을 통해 막막한 시름에 대한 속 시원한 해법을 들려주는 법륜 스님은 오늘의 삶이 만족스러우면 그것이 곧 행복한 인생이라고 말한다. 지금부터 시작해 앞으로도 쭉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스님의 지혜를 전한다.





구멍 난 가슴에 찬바람이 드는 나이의 당신에게
"좀 더 큰 마음으로 이웃과 세상을 위해 살아보세요"


남편은 자기 일로 바쁘고 아이들도 다 커서 별로 할 일이 없을 때 40대 주부들은 우울증을 겪기도 합니다. 자기 존재감이 없어지면서 '나는 그동안 뭐 하고 살았지?' 하며 우울해지는 겁니다. 이때 겪는 갱년기 장애는 신체에서도 오지만 절반은 정신적인 것에서 옵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엄마, 엄마" 하면서 늘 엄마 곁에서 맴돕니다. 그러다 사춘기가 되면, 특히 남자아이들은 엄마와 좀 거리를 두고 같이 다니는 걸 창피해합니다. 그러면 엄마는 자식의 변화를 배려하면서 아이와의 관계를 조율해야 하는데 여전히 어린아이 취급을 합니다. 밖에 나가면 여자아이들에게 제법 어른 흉내도 내고 싶은데 엄마만 만나면 아이 취급을 받으니까 같이 있지 않으려고 하는 겁니다.

가정에서 해야 할 일이 점점 줄어들다 보니 아침에 자식과 남편이 다 나가고 나면 오후까지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다 거울을 보면 벌써 흰 머리카락이 생기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생긴 걸 발견합니다. 사회에 나가서 뭔가 해보려고 마음을 내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자신감도 없습니다.

이럴 때 집에 있으면 자꾸 아이나 남편을 문제 삼기 쉬우니까 자원봉사 같은 활동을 하면 우울하고 허전한 마음을 치유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돈을 안 벌 뿐이지 자기 일이 있고, 자신의 봉사가 다른 사람에게 귀중하게 쓰이는 경험을 하면 우울증에 빠지지 않고 생기를 얻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시간과 열정을 세상을 위해 아주 의미 있게 쓰다 보면 보람 있게 자아실현도 할 수 있습니다.

한 주부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봉사활동을 하면서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직장보다 더한 열정을 갖고 일하니까 갱년기 장애나 우울증을 모르고 지냅니다. 남편들은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하느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부인이 그런 활동을 하면 정신적으로 굉장히 건강해지고 자식에게도 덜 집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너그러워집니다.

지금까지 내 인생, 내 자식, 내 남편, 내 부모만 알고 열심히, 착실히 살아왔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나 가족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잘못 산 게 아니라 단지 개인적으로 살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남은 인생은 좀 더 큰 마음을 내서 이웃과 세상을 위해 살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내 울타리를 깨고 나가면 시야도 넓어지고 인생도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식이 시험에 떨어졌다고 해도, 심지어 배우자가 세상을 떠나는 일이 생겨도, 오래 힘들어하지 않고 잘 극복해나갑니다. 인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덜 구애받을 만큼 내면의 힘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남편,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만 쌓여가는 당신에게
"상대가 아닌 내 마음부터 살피세요"


20대 때는 서른 되고 마흔 되면 더 너그러워지고 대인관계도 더 유연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해심도 커져서 남도 더 배려하게 될 걸로 생각하지요. 하지만 나이 들어가니 너그러워졌나요? 물론 '나이 들면 너그러워진다'라는 옛말이 있긴 합니다. 농경사회에서는 열심히 일하다 나이 들면 자식에게 물려주고 조금 한가해지니까 너그러워진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50, 60대가 돼서도 악착같이 돈을 벌어 먹고살아야 하는 각박함 속에서는 나이 들었다고 해서 너그러워진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30대든, 50대든 마음을 열고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너그럽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니까 나이와 상관없이 상대를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사람은 인간관계를 편안하게 만들어갑니다. 상대를 미워하는 대신 그냥 놓아주면 상대와 원수 질 일도 없고 내 인생도 편안해집니다. 결국 관계의 문제를 풀 열쇠는 내가 쥐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담하러 오시는 분에게 아무래도 호되게 이야기하게 되는데, 그것은 상대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먼저 '나'를 바라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자기 편은 안 들어주고 상대만 편들어준다고 서운해합니다.

가령 상담 온 부인에게 "남편에게 숙이라"하면 "남편에게 문제가 있는데 왜 저더러 숙이라고 하세요?" 합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 상대가 그르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서로 옳다고 싸우는 일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먼저 자기를 살피고 마음을 바꾸면 서로 편안해지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결혼한 남자는 한 여인의 남편이라는 입장을 확실하게 하고, 한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입장은 정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고부갈등이 있을 때 남자가 중간에서 해결한답시고 아내에게 "당신이 이해해라" 하면 아내는 남편이 어머니 편을 드는 것 같아서 싫어합니다. 또 남편이 어머니에게 가서 아내 편을 들면 어머니는 아들을 빼앗긴 것 같아서 서운해합니다. 그러니 한 여인의 남편 입장을 분명히 하고 난 후 과거에 한 여인의 아들이었음을 잊지 말고 늘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내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쨌든 남편을 사랑해서, 괜찮다고 생각해서 결혼했으니 그 사람을 누가 만들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시어머니가 낳아서 그때까지 키웠는데, 어느 날 며느리에게 자신이 애지중지하며 키운 아들을 빼앗겼으니 그 시어머니의 심리 상태가 어떨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두 가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는 '잘 낳아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고마운 마음, 다른 하나는 '당신의 아들을 빼앗아서 죄송합니다' 하는 마음입니다. 시어머니가 질투랄까, 약간 트집을 잡아도 감사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을 내면 갈등이 커지지 않습니다.

시어머니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자식은 이제 마음에서 떠나보내야 합니다. 계속 '내 자식인데','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자식에게 서운하고 며느리도 미워집니다. 자식을 결혼시키고 나면 그들은 그들대로 살아가도록 놓아주어야 합니다. 이제는 자식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자기 인생을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갈등은 자기를 살피는 데서 출발해야 하는데 상대가 먼저 바뀌기를 기대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분란만 커지고 갈등만 깊어지게 됩니다. 너그러워지고 이해심이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것은 바로 내가, 내 인생이 그렇게 변화하는 겁니다. 그래서 인연의 매듭을 푸는 것은 상대를 바꾸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고 나를 바꾸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 마음마저 가난한 당신에게
"부족하다 느끼면 가난하고, 여유를 느끼면 부자가 됩니다"


언젠가 한 부부를 상담했는데 남편의 건강이 심각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당장 휴직서를 내고 쉬는 게 좋겠다고 했더니, 옆에 있던 부인이 "한 6개월만 더 다니다가 쉬면 안 될까요?"하는 겁니다. 이유를 물으니 이렇게 답합니다.
"6개월만 있으면 인사 이동이 있거든요. 남편이 이사로 승진할 차례인데, 승진하고 나서 쉬면 안 될까요?"

생명이 위독해서 당장 쉬라는데 남편 목숨은 안중에도 없고 지금 휴직하면 승진이 안 될 텐데, 하는 걱정만 앞섰던 겁니다. 그런데 그분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 다 돈에 집착하고, 앞으로 살아갈 일에 집착하면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인도의 불가촉천민 마을에서는 일당으로 1달러 미만을 받습니다. 그나마 그것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요. 그런 인구가 지구상에 12억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의 고통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먹고살 만한데도 늘 돈에 쫓기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얻을 생각만 하느라 절에 와서도 부처님께 자꾸 뭔가 달라고만 합니다. 옛날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 절에서 스님들이 공양을 하다가 객승이 오면 자기 밥그릇에서 밥 한 숟가락씩 덜어서 모아주었는데 이것을 십시일반이라고 합니다. 또 옛날에는 형제간에 정이 있으면 콩 한쪽도 12명이 나눠 먹는다고도 했습니다. 이처럼 나눠 먹는 마음을 내면 마음이 부자가 됩니다.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소박하게 살겠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있던 돈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반면에 많이 먹고, 많이 입고, 많이 쓰겠다는 마음을 내면 돈이 많은데도 부족함을 느낍니다. 부족함을 느끼면 가난한 자가 되고, 여유가 있으면 부자가 되는 거예요.

우리가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한 끼 식사를 때우지 못할 형편은 아니고,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렵다 해도 1천원을 보시하지 못할 형편은 아닐 겁니다. 자신의 형편이 어렵다고 괴로워만 할 게 아니라 베푸는 마음을 내면 오히려 마음이 부자가 되고 삶에 대해서도 의연해져요.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지나간 인생을 아쉬워하며 시름에 잠기는 당신에게
"잘 물든 단풍이 봄꽃보다 아름답습니다"


흔히 '떨어지는 가랑잎이 쓸쓸하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떨어지는 가랑잎은 쓸쓸한 걸까요? 아닙니다. 바로 그걸 보는 내 마음이 쓸쓸한 거예요. 가랑잎을 보면서 '찬란했던 내 젊음도 가랑잎처럼 스러져 가는구나' 하고 나이 들어가는 내 인생을 아쉬워하는 겁니다.

우리의 인생도 잘 물든 단풍처럼 늙어가면 나이 듦이 결코 서글프지 않습니다. 자연이 변화하듯 편안하게 늙어가면 그 인생에는 이미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렇듯 아름답게 물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등바등 늙지 않으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나이 들어가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노후를 아름답게 마무리 지어야겠다'라는 생각마저도 없이 변화에 순응하는 겁니다. 나이 들면 나이 드는 대로, 늙으면 늙는 대로, 병이 나면 병이 나는 대로, 머리가 하얘지면 하얘지는 대로, 주름살이 생기면 주름살이 생기는 대로, 또 아파서 걸음걸이가 불편하면 '그동안 많이 부려먹었으니까 고장 날 때가 됐지' 하면서 받아들이는 거예요.

자기에게 주어진 처지를 받아들인 사람의 얼굴은 무척이나 편안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저분은 나이 들어도 참 밝고 당당하게 사는구나' 하고 여깁니다. 그런 모습이 바로 잘 물든 단풍이 아름답듯이 늙음이 비참해지지도 않고 초라해지지도 않고 순리대로 잘 늙어가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잘 물든 단풍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나침'을 경계해야 합니다. 과욕을 부리지 않아야 하는데, 나이 들어 과한 것은 항상 부작용이 따릅니다. 젊을 때는 무리해도 금방 회복되지만 나이 들어서 지나치면 이겨내지를 못합니다.





첫째, 과식을 하면 안 됩니다. 젊을 때는 많이 먹어도 소화제 먹으면 금방 괜찮아집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소화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많이 먹으면 병이 나서 팍 늙어버립니다. 아무리 맛있어도 과식하면 안 되고 적당히 먹어야 합니다.

둘째, 과음하면 안 됩니다. 젊을 때는 길거리에 쓰러질 정도로 취해도 하루 이틀 지나면 괜찮아집니다. 하지만 나이 들어 과음하면 가을비 온 뒤 기온이 떨어지는 것과 같아요. 가을비가 한 번 오면 기온이 팍팍 떨어지듯이 몸이 급격히 망가집니다.

셋째, 과로도 하면 안 됩니다. 젊을 때는 과로하더라도 병원에서 링거 맞고 좀 누워 있다가 일어나면 괜찮아집니다. 그런데 나이 들어서 과로하면 회복이 잘 안 돼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몸에 맞게 적절히 활동해야 한다는 겁니다.

나이 들면 뭐든지 지나치면 안 되고, 젊을 때처럼 욕심을 내도 안 됩니다. 젊을 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 "젊은이가 용기가 있고 의욕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또 큰 욕심을 내어 무엇을 하려 하면 세상 사람들이 "포부가 크다"라고 말해줍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 생각을 하면 노욕이라고 하는데, 좀 추하게 욕심을 부린다는 뜻이거든요. 그리고 젊을 때는 격렬하게 주장해도 결과가 좋은데, 나이가 들면 어떤 주장도 격렬하게 하기보다 평화적으로 설득하고 점잖음을 유지해야 나도 좋고 세상에도 이익이 됩니다.

나이가 들면 자꾸 일을 벌이고 계획을 세워서 무언가를 하려고 할 게 아니라 정리를 해나가야 합니다. 인생을 포기한다는 게 아니고 열매를 맺는 과정이기 때문에 잔가지를 정리하면서 잘 마무리해야 한다는 겁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한탄하거나 이를 인정하지 않고 젊어지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단풍처럼 물들어가는 나'를 차분하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욕심을 하나하나 내려놓을 수 있게 됩니다.
*이 기사는 「인생수업」(법륜 저, 휴)에서 발췌·정리한 것입니다.

<■기획 / 이연우 기자 ■사진 제공 / 휴 그림 유근택>